백암 박은식 선생 서거 100주기 추모식 11월 1일 개최
‘백암 박은식 선생 서거 제100주기 추모식’ 11월 1일 국립서울현충원서 개최
- 1일(토)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개최... 권오을 장관,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0여 명 참석 국가보훈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 선생 서거 제100주기 추모식’이 11월 1일(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임시정부대통령백암박은식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박유철) 주관으로 개최 된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협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와 추모식사, 추모사, 추모공연,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1859년 황해도 황주 출신의 박은식 선생은 민족사학의 창시자이자 사상가· 교육자·언론인·독립운동가로서 ‘민족의 혼을 지키는 역사관’을 통해 일제 강점기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대한제국 시기, 언론과 교육을 통해 계몽운동에 힘쓴 박은식 선생은 「황성 신문」,「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며 자주독립과 민권의식을 고취하 였고, 대한협회에서 국민교육과 한글보급, 신문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박은식 선생은 망명지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민족혼을 지키는 역사 저술과 사상 활동에 몰두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925년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해외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선생은 ‘나라는 망할 수 있어도 혼은 죽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민족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대표 저서「한국통사(韓國痛史)」는 일제의 침략과 국권 피탈의 과정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민족의 고난을 ‘통(痛)의 역사’로 기록했고,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투쟁을 기록으로 남겨 민족정신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했다. 박은식 선생은 1925년 11월, 상하이에서 노환으로 서거(향년 66세)하였으며,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하였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박은식 선생께서는 독립운동 지도자로서 독립 운동 통합과 민족 정체성 형성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라며 “국가보훈 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생께서 강조하신 통합의 뜻을 계승하여 보훈을 통해 국민통합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위대한 독립 운동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끝> 붙임 1. 추모식 개요 및 식순
2. 백암 박은식선생 주요 공적





